사설

'혀 절단 사건'이 아니라 '혀 절단으로 방어한 성폭행 사건'

성폭행 피해자의 정당방위를 가해행위로 치부하지 않아야..
56년만의 재심청구
성폭행 방어에 대한 제한 여부가 달려 있는 만큼 법원의 올바른 판단이 필요할 때

2020년 5월 6일, 최말자 씨(74)는 56년 전 벌어진 성폭력 사건의 피해와 부당한 판결을 고발하고 재심청구를 발표하기 위해 부산지법 앞 기자회견에 섰다. 이른바 ‘혀 절단 사건’으로 불리는 사건의 전말은 이러하다.

1994년 5월 6일 최 씨(당시 18세)는 강제로 성폭력을 시도하려던 노 모씨(당시 21세)의 혀를 깨물어 저항했고, 이로 인해 노 모씨의 혀가 약 1.5cm 절단되었다. 부산지방법원 형사부는 최씨가 ‘중상해죄’를 범했다고 판결하여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반면, 노 모씨의 성폭력은 죄로 인정되지 않고 특수주거침입과 특수협박 혐의만을 적용하여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이라는, 최 씨보다 가벼운 형을 선고받았다. 최 씨는 정당방위임을 주장했지만 법원에서는 이를 인정하지 않았다.

56년 동안 이루어진 세대의 변화와, 인식의 변화와, 가치관의 변화는 최말자 씨가 당한 피해와 억울한 판결을

뒤집고 정당한 판결을 내릴 수 있을까.

 

법원은 성폭력에 관련한 이 사건의 재심을 허용하고, 최 씨의 행동은 정당방위임을 인정한 뒤 최 씨에게무죄를 선고함으로써 우리 사회에서 성폭력에 대한 방어는 정당하게 인정되며 과거의 판결은 부당했음을 국민에게 투명하게 보일 필요가 있다.

사회적으로 대두되는 성폭력 사건의 책임은 전적으로 가해자에게 돌아가야 한다.

피해자가 더 큰 주목을 받고, 성폭력을 방어하기 위한 피해자의 행위가 가해행위로 안일하게 판단되는 일은 없어야 한다는 뜻이다. 이는 성폭행에 대한 피해자의 적극적인 방어를 제한하는 것이다. 피해자들이 스스로의 안전과 성적 부분을 침해받는 위급한 상황에 방어를 망설이고 가해자가 되레 피해자의 방어를 폭력으로 고발하는 적반하장 식의 사태로 이어질 수 있다.

 

인터넷에 ‘혀 절단 사건’이라 검색했을 때, 최씨가 당한 성폭행 사건은 ‘최말자 사건’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에 대해서도 새로운 인식이 필요하다. 주목받고 처벌받아야 할 대상은 노 모씨, 즉 성폭행 가해자이므로 ‘최말자 사건’이 아니라 ‘성폭행 사건’ 또는 ‘노 모씨(가해자 본명) 사건’이 합당한 명칭이다.

또, 방어를 위한 수단이었던 ‘혀 절단’이 가해 행위처럼 강조된 ‘혀 절단 사건’도 잘못된 명칭이다. ‘혀 절단’이 성폭행 사건의 방어수단이었음을 명백히 밝히고 피해자 최씨가 당한 ‘성폭행의 피해’를 강조하는 ‘혀 절단으로 방어한 성폭행 사건’으로 인식되어야 한다. 국민들의 인식을 바꾸는 범죄사건의 명칭에 대한 논의는 범죄자들에게 경각심을 유발하는 시작점이 될 수 있을 것이라 예상한다.

피해자보다 가해자의 행위가 부각되고 그로 인한 알맞은 처벌이 촉구되어야만 한다.

56년 뒤 현재, 새로운 인식과 정의로 사건이 판가름되어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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