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표이사실

[서대표의 눈] “지금 안된다고 해서, 나중에도 안된다는 법은 없잖아요”

대표이사실의 첫 번째 코너, '서대표의 눈'은 청소년에게 귀감이 될 수 있는 인물들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올해 22살, 김호이 씨는 여전히 세상에 궁금한 것이 많다. 자신의 이름 마저 ‘호기심 많은 아이’라는 뜻으로 풀어낸다. 어릴 때부터 낯가림이 없어 누구와도 대화를 잘하던 그는 세계적인 인터뷰어를 꿈꾼다.

 

“돈 주고도 만날 수 없는 사람들을 만나 인사이트를 얻고 삶에 접목시키고 싶어요. 나뿐만 아니라 독자들에게 귀감이 될 수 있는 말들을 전해주고 싶죠”

 

 

긍정적인 사람이 되어가는 길

 

“그 때 제가 아프지 않았더라면 제 인생이 지금과는 다르지 않았을까요?”

 

호이 씨는 세 살 때 뇌수막염을 앓았다. 그는 어려서부터 3개월 간 입원 생활을 했다. 너무 어렸을 적 일이라 병원 생활이 정확하게 떠오르지 않는다. 부모님으로부터 들은 이야기가 전부다.

 

그러나 호이 씨는 자신이 아팠던 일이 하나의 터닝포인트라고 생각한다. 그는 자신이 늘 밝은 사람으로 살아오게 된 계기였다고 회상한다. 뇌수막염은 세균 종류에 따라 치사율이 80%까지 달한다. 여느 병과 같이 어린 아이에겐 더욱 치명적이다. 그는 병을 극복해낸 자신의 삶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깨달았던 것이다.

 

“초등학생 때는 놀림도 많이 받았어요. ‘장애인 같다’라는 말도 들었고, ‘쟤 이상해’라는 말도 많이 들었죠” 그는 좌절하지 않았다. “틀린게 아니라 다른거잖아요. 누가 뭐라하든 ‘내가 아니면 된거지’라고 생각했어요” 그는 모든 것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고자 했다.

 

 

남달랐던 ‘들이대 정신’, 기회를 만들다

 

호이 씨에게 세상은 만나고 싶은 사람들로 가득하다. 그는 초등학교 3학년 때 처음으로 휴대폰이 생겼다. 설레임도 잠시, 그는 곧장 방송국에 전화했다. 방송국은 그가 만나고 싶은 연예인들로 가득했기 때문이다. “방송국이죠? 강호동 씨 만나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해요? 김연아 선수는 어떻게 해야 만날 수 있어요?”

 

“처음에는 욕도 엄청 먹었어요. 지상파 방송국에서는 ‘장난전화하지 말라’하면서 그냥 끊더라고요. 속상했죠. 난 진심인데……. 태릉선수촌에서는 메일 주소를 받았던 기억도 있어요. 그땐 행복했죠”

 

호이 씨는 중학교 1학년 때 기술 과목 선생님의 추천으로 ‘특허청 청소년발명기자단’ 활동을 시작했다. 청소년 기자 활동은 자신과 가장 잘맞는 활동이라 생각했지만, 주변의 우려도 많았다.

 

“기자단 활동을 하면서 사람들을 만나는게 즐거웠어요. 중학생 때부터 대구, 부산, 전라도 광주, 혼자 전국을 다녔어요. 하지만 부모님은 제가 혼자 다니기엔 어리다고 생각하셨나봐요. 반대도 엄청 심하셨어요”

 

그를 달갑지 않게 보는 사람들도 많았다. 그들은 그의 쉽지 않았던 인터뷰 섭외 과정을 고려하지 않고 호이 씨가 어리다는 이유로 사람들이 그를 만나준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편견이 가득한 시선에도 그는 굴하지 않았다.

 

“주변에선 ‘너가 학생이니까 사람들이 널 만나주는거야’라는 말을 엄청 하더라고요. 그래서 생각했죠. ‘그래? 그러면 학생 때 많이 만나면 되겠네. 그럼 인연이 돼서 어른이 되어도 많이 만나주지 않을까?’라고요. 오히려 동기부여가 됐어요”

 

호이 씨는 늘 어딜가나 명함을 가지고 다닌다. 궁금증이 생긴 사람에게 연락처를 남기기 위해서다. 그는 중학교 3학년 때 아주경제 신문사가 주최한 포럼에 참여했다. 정치인과 기업인들이 가득한 행사였기 때문이다.

 

“저는 늘 명함을 들고 다녀요. 그 날도 아주경제 곽영길 대표님께 명함을 드렸어요. 그런데 대표님이 잠깐만 나와보라는거에요.”

 

곽 대표는 호이 씨를 남다르게 봤다. 그는 호이 씨에게 “멘토가 되어 줄게”라며 도움을 자처했다. 곽 대표의 도움으로 호이 씨는 다음 해 포럼에서 강연자로, 사회자로 무대에 설 수 있었다. 이후 호이 씨는 아주경제의 명예기자가 되었다. 이제는 아주경제의 객원기자가 되어 곽 대표의 조언을 받으며 인터뷰어로서의 활동을 이어나가고 있다.

 

“이제는 회장님이신 곽영길 대표님께선 저에게 늘 ‘들이대’라고 부르셔요. 저는 무턱대고 사람들에게 들이대거든요. 그렇지 않고서야 대표님도 만날 수 없었을테고, 많은 기회도 받지 못했겠죠”

 

호이 씨는 가수 인순이 씨와의 인연도 잊지 못한다. “저는 ‘거위의 꿈’이라는 노래를 좋아해요. 그래서 인순이 씨와 인터뷰를 하고 싶었어요” 그는 SNS 댓글을 통해 인터뷰를 요청했다.

 

“인순이 씨에게 인터뷰를 요청했더니, 답글로 ‘내가 인터뷰를 해주면 너는 뭘 해주겠냐, 나와 토크콘서트를 해보지 않겠냐’라고 하시더라고요. 저로선 영광이었죠. 시험 전 날인데도 불구하고 강원도 홍천까지 달려갔어요” 그렇게 호이 씨는 강연도 하고, 인터뷰도 성공적으로 마쳤다. 지금까지도 연락하며, 밥도 먹는 사이가 됐다.

 

 

 

실패가 아니다, 성공을 위한 발판이다

 

호이 씨는 지금까지 1,200명 넘는 사람들에게 인터뷰를 요청했다. 그 중 340명과 만났다. 그는 실패에 익숙해졌다. 그러나 그의 사전에서 좌절이란 찾아볼 수 없었다.

 

“이제 거절은 일상이 됐죠. 인터뷰를 해준다고 했는데 안해준 경우도 있고, 인터뷰 하러 갔는데 못하고 돌아온 적도 많아요. 그러나 이 모든 것들도 하나의 스토리가 된다고 생각해요. 한 번에 성공하는 인터뷰도 좋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에도 ‘언젠가는 인터뷰를 다시 할 수 있을테니까’라는 생각으로 좌절하지 않아요”

 

그가 한 명을 인터뷰하기 위해 몇 년이 걸리는 것은 일상이다. 김연경 선수를 인터뷰하기 위해 2년을 기다려야 했고, 배우 이순재 씨와 개그맨 김재우 씨 등을 인터뷰 하기 위해서 3, 4년을 기다리는 일도 감수했다. 하지만 호이 씨도 때론 참지 못하는 일이 있다.

 

“인터뷰를 거절당하는 건 괜찮아요. 그 분들도 바쁘시니까요. 그런데 저와의 인터뷰는 거절하고 다른 언론사에서는 인터뷰를 하는 경우가 더러 있어요. 그럴 때는 아쉽죠”

 

그는 자신만 인터뷰를 못한 경우엔 늘 소속사에 전화를 건다. “이 언론사랑은 몇 날 며칠에 인터뷰 하셨던데 왜 저랑은 안해주시죠?” 이유를 듣고, 인터뷰에 응해줄 것을 약속받고 전화를 끊는다.

 

“지금 안된다고 해서 나중에도 안된다는 법은 없잖아요”

 

호이 씨는 한 가수로부터 ‘앨범 발표가 끝나면 인터뷰를 해주겠다’고 약속 받은 기억이 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도 매니저에게 연락이 오지 않았다. 그는 가수의 사인회를 찾아가 직접 명함을 전달했다. “고등학생이 벌써 기자에요? 인터뷰 해줄게요!” 다시 인터뷰에 응해줄 것을 약속 받은 그는 매니저에게 연락했으나 고등학생이라는 이유로 다시 거절당했다. 이후 가수가 군대에 입대해 인터뷰에 실패한 듯 했다.

 

“가수 분이 전역 후 북콘서트를 한다는 소식을 듣고 출판사에 연락했어요. 인터뷰는 안되고 취재는 가능하다고 하더라고요. ‘취재라도 어디냐’ 싶어서 찾아갔죠. 질의응답 시간에 마이크를 잡을 기회가 생겨 다시 인터뷰를 요청했죠” 호이 씨는 몇 년의 고집 끝에 마침내 인터뷰를 성공했다.

 

그는 한 인터넷 강의 사이트 대표와도 인터뷰를 요청하기 위해 그의 강연을 들으러 간 적이 있다. 무대 뒷 문에서 대표를 기다렸으나 관계자로부터 ‘이미 가버렸다’는 이야기를 전해듣는다. 다음 날, 호이 씨는 그의 회사로 찾아갔다.

 

“관계자분이 ‘사무실엔 계시는데, 만날 수 없다’고 하시더라고요. 이 말은 언젠간 나온단 소리잖아요. 그래서 사무실 앞에서 무턱대고 몇 시간을 기다렸어요. 그랬더니 대표님이 내려오시더라고요. 음료수와 책을 건네주시면서 저를 돌려보내셨어요”

 

호이 씨는 3년이 지나고 작년에 강연장을 다시 찾았다. “대표를 찾아가 인사드렸더니 ‘너 어떻게 지냈어’라며 반갑게 맞아주시더라고요. 인터뷰가 어려운 사람들은 이렇게 인연이라도 만들어요. 나중에라도 인터뷰를 할 수 있게 말이죠”

 

 

‘인’생의 ‘터’닝포인트를 가져다 준 ‘뷰’티풀 라이프

 

그는 많은 사람들에게 인터뷰를 요청한다. 하지만 자신 스스로의 섭외 철학이 있다. 단순히 화제가 되고, 유명한 인물이어서 인터뷰를 진행하는 것이 아니다. 인터뷰이는 ‘독자들에게 전할 만한 메시지가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인터뷰가 돈 되는 일은 아니에요. 오히려 나가는 돈과 시간이 더 많죠. 하지만 인터뷰를 통해 돈 주고도 만날 수 없는 사람들을 만나 인사이트를 얻고 삶에 접목시키고 싶어요. 나뿐만 아니라 독자들에게 귀감이 될 수 있는 말들을 전해주고 싶죠”

 

“저는 아티스트와 인터뷰를 많이 해요. 그들은 하나같이 ‘영감이 떠오르면 영감으로 놔두지 않는다. 작업물로 남긴다’고 말해요. 생각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실천을 한다는 것은 쉽지 않거든요. 이런 이야기를 독자들에게 전해주고 싶었어요”

 

그는 최근 2020 도쿄올림픽에 참가했던 선수들과도 인터뷰를 진행했다. “운동선수들은 어릴 때부터 그 일을 꾸준히 해 온 사람들이잖아요. 포기하고 싶을 때도 얼마나 많았겠어요. 그 때 포기했다면 그 분들은 성공하지 못했겠죠. 독자들도 무엇이든지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해오면 좋겠다라는 메시지를 던지고 싶었어요”

 

호이 씨는 늘 사람들과 함께 한다. 사람들을 만나며 행복을 찾아 나선다. 오늘도 호이 씨는 누구와 대화를 할지 행복한 고민을 한다.

 

“여러분, 행복을 미루지 마세요. 행복은 아이스크림과 같아서 지금 행복하지 않으면 녹아버려요. 행복을 취업해서, 결혼해서, 애 낳아서, 애 다 키우고 나서, 노후 준비해서로 미루지 마세요. 우린 언제 죽을지 모르잖아요. 행복을 미뤘다가 내일, 혹은 지금 죽으면 얼마나 후회가 되겠어요. 여러분도 지금 죽는다 해도 행복한 삶을 살았는지 생각해보면서 살았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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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수빈 기자

청소년 기자단 '혜윰'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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